1657(메이레키 3)년에 에도 거리를 태운 「메이레키 대화재」(음력 1월 18~20일=지금의 3월 2~4일)의 원인에 대해, 지난번(3월 24일) 「후리소데 화재」로 불리는 전설을 썼지만, 방화설도 많다고 합니다.
정부 중앙방재회의 「재해 교훈의 상속에 관한 전문조사회」 보고서 「1657 메이레키 에도 대화재」(헤세이 16년 3월)에는 방화설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은 보고서 원안 단계에서는 방화에 관한 기술이 있었습니다.
간단히 소개합니다.
「당시 시중에 가장 퍼져 있던 발화 원인은 불량 로닌에 의한 방화였다. 그중에는 대화재 6년 전 막부 전복을 꾀한 유이 쇼세쓰 일파의 잔당이 막부에 대한 보복으로 방화했다는 설, 과감한 에도 개조를 위해 막부가 꾸민 방화라는 설도 있으나, 어느 것도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며 소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참고로 유이 쇼세쓰의 난(게이안 변)은 3대 쇼군 이에미쓰가 많은 다이묘를 개역한 탓에 시중에 넘친 낭인들에 의한 쿠데타=반란 미수 사건입니다. 조금 옆길로 새면, 유이는 군학자였고 그의 숙 「장공당」이 있던 곳이 간다 렌자쿠초이므로 다케바시에서도 걸어 10분 남짓, 도영지하철 아와지초역 부근입니다. 소설가 이케나미 쇼타로가 사랑한 거리로 알려졌지만, 메이레키 대화재 후 이곳 주민은 신전 개발을 위해 지금의 미타카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미타카에 가미렌자쿠, 시모렌자쿠라는 지명이 있는 데는 그런 사연이 있습니다(사진은 시바타 렌자부로 소설 표지).
어쨌든 대화재 직후에는 혼란을 틈탄 절도와 약탈, 말 그대로의 불난 집 도둑도 많았을 테니, 방화 소문이 퍼져 사람들에게 불안을 주었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막부 방화설은 아무리 봐도 황당할까요. 에도는 급속한 발전으로 도시 기능이 한계에 달한 한편, 주민 퇴거는 설득과 이전처 확보를 포함한 보상 등 방대한 수고와 돈이 필요해 번거로우니, 불탄 들로 만들어 단숨에 도시 개조를 실행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화재 후 에도 거리는 대개조가 이뤄졌으니, 의외로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쪽도 있을지도. 당시 막부의 절대적 권력을 생각하면 그런 무모한 일이, 하는 한편, 오늘날에도 개발도상국 슬럼 철거 등에서 방화까지는 아니어도 윗선의 강압적 수법을 듣게 되니, 혹시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방재회의 보고서 최종판에서 이 방화 관련 기술이 왜 싹둑 잘렸을까. 윗사람이 스스로 불을 지른다는 이야기는 정부 보고서에 어울리지 않아서……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