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스사이드 빌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만화가들의 작별 낙서로 화제가 됐던 지요다구 히토쓰바시의 쇼가쿠칸 빌딩은 재건축 중입니다. 이 쇼가쿠칸에서 『주간 소년 선데이』가 창간된 날과 고단샤에서 『주간 소년 매거진』이 창간된 날이 완전히 같은 날이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꼭 55년 전인 1959년 3월 17일이 그날입니다.
기획은 선데이 쪽이 빨랐고, 데즈카 오사무, 테라다 히로오, 후지코 후지오 등 기세 좋은 만화가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매거진은 쇼가쿠칸이 주간 소년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실질 한 달 반 만에 창간에 맞췄다고 합니다.
창간 당시 독자의 상당수는 이른바 단카이 세대입니다. 지금도 소년 대상 코믹 잡지는 50만~250만 부를 발행하고, 전자책에서도 성인용을 포함하면 80% 이상이 코믹이니, 만화는 역시 손쉽게, 잘 읽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창간 후에도 선데이는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이가의 가게마루』, 아카쓰카 후지오의 『오소마쓰 군』, 후지코 후지오의 『오바케의 Q타로』 등 히트작을 연달아 냈습니다. 1962~64년 사이에 발행 부수는 50만 부에 도달해 매거진을 순식간에 따돌렸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 초등학생들은 돌려 읽었으므로, 선데이나 매거진 한쪽만 읽힌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1967~68년을 경계로 둘의 부수는 역전됩니다. 매거진은 1966년부터 가지와라 잇키·가와사키 노보루의 『거인의 별』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68년부터 다카모리 아사오(가지와라의 다른 이름)·지바 테쓰야의 『내일의 죠』가 시작되자 형세는 완전히 바뀌어, 매거진은 1970년에 발행 부수 150만 부를 달성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독자가 소년에서 학생·사회인까지 넓어졌다는 뜻이겠지요. 단카이 세대가 사회인이 되어서도 계속 소년지를 읽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쇼가쿠칸은 1968년에 청년 대상 만화지로 『빅 코믹』을 창간했고, 계열사 슈에이샤에서 『소년 점프』(이듬해 69년에 주간화)를 창간했으므로, 쇼가쿠칸을 중심으로 한 히토쓰바시 그룹도 실질적으로는 고단샤 매거진 150만 부에 맞서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년 전인 2009년 3월 17일, 『주간 소년 선데이』와 『주간 소년 매거진』 창간 50주년 대동창회가 데이코쿠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메인 사진은 그 50주년 동창회에 참석한 관계자에게 기념품으로 배부된 선데이와 매거진의 <창간호 완전 복각판>입니다.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것은 모두 당시 인기 스포츠 선수였습니다. 매거진은 제46대 요코즈나 아사시오 세키, 선데이는 나가시마 시게오 씨였습니다.
오른쪽 위 사진은 『주간 소년 선데이』 창간호 신문 광고입니다. 정가 30엔=1959년 3월 18일 마이니치신문에서.
오른쪽 아래 사진은 『주간 소년 매거진』 창간호 신문 광고입니다. 정가 40엔=1959년 3월 19일 마이니치신문에서입니다.
1969년에는 점프 외에 아키타 쇼텐에서 『주간 소년 챔피언』도 발매되어, 이 4대 소년지를 무대로 새로운 문화가 성장해 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