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한나 아렌트」를 보고 왔습니다. 평일 퇴근 후, 팰리스사이드 빌딩에서 걸어 15분인 진보초 「이와나미 홀」로 갔습니다. 19시부터의 마지막 회였지만, 사전에 혼잡이 예상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찍 티켓(사진 아래)을 사서, 18시 반 개장 5분 전에 엘리베이터로 10층에 올라가니 이미 꽤 긴 줄이었습니다. 맨 뒤를 찾아 계단을 내려가니 7층까지, 인원으로 치면 100명 가까이 늘어선 것 같았습니다. 소문대로 성황입니다. 상영 시작 때는 8~9할가량 좌석이 찬 인상이었습니다(이곳 상영은 12월 13일까지입니다).
신문 영화란 등의 해설에 있는 대로, 독일에

태어나,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그린 역사 드라마입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낸 전 나치 고관 아이히만이 1960년대 초, 도피처인 남미에서 붙잡히고, 그 전범 재판에서 한나의 필치로 쓰인 방청기가 큰 논쟁을 일으킨 사실을 그립니다. 한나는 「합법적인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아이히만의 무사고성을 지적하고, 그러한 「악의 평범함」을 규탄했습니다. 극악무도한 살인귀를 재판한다는 재판의 "콘셉트"를 부정한 셈이어서, 격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 한나의 고뇌와 신념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통해, 「절대악」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생각하다」란 무엇인가를 철학적으로 묻는 초강경파 작품입니다. 시온주의 운동의 지도자 쿠르트 등 그녀와 절연해 가는 오랜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믿는 것을 양보하지 않는 한나의 힘에 감명을 받는 동시에, 진실에 충실하다는 것의 엄격함을 배웁니다.
철학을 진지하게 배운 적 없는 몸에는 어려웠다는 한 마디입니다. 그녀의 스승인 하이데거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나치에 입당하고 예찬한 경력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 하이데거와 애인 관계이기도 했던 한나가, 하이데거의 사상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등 기초 지식이 없으면, 이 영화는 좀처럼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오기의 변명"을 하자면, 세상에는 어려운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는 의미에서, 가끔은 이런 난해한 영화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한나에게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철학 저서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같은 제목(정확히는 「인간의 條件」)의 고미카와 준페이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중국에서 현지 사람을 가혹하게 부리는 광산이었던 것 같은데, 중국인들이 항의 행동에 나서고, 일본 헌병대장이 본보기로 7명을 처형하는 가운데, 중국인에게 동정적이었던 일본인 감독계의 주인공이 「그만둬 달라」고 외쳐, 처형이 몇 번째인가에서 중단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세세한 곳에서 기억의 착오가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 주인공은 헌병에게 린치를 당하고, 소집 면제가 취소되어 군대에 던져집니다. 주인공의 갈등에, 읽으며 가슴이 조여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나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에, 전전, 유대인이 수용소로 보내질 때, 유대인 지도자가 마지못해나마 「협력」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한나가 아이히만 재판에서 나온 그 이야기를 방청기에 쓴 것이, 비판받은 큰 요인이었습니다. 고미카와가 그린 주인공과 유대인 지도자는, 모두 극한 상황 속에서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았다는 의미에서,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