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를 맞아 올해도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11일 밤 방송된 드라마 『반딧불의 무덤』(BS 닛테레)도 그중 하나입니다. 원작은 노사카 아키유키 씨의 동명 소설로, 2005년 종전 60주년 스페셜로 드라마화되어 화제가 된 작품의 재방송입니다. 고베 공습으로 집을 잃고 어머니를 잃은 중학생 세이타가 네 살 여동생 세쓰코를 데리고 친척에게 의탁했으나 다투고 집을 나와, 결국 영양실조로 숨지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는 힘껏 살려고 한 남매와 함께, 두 사람에게 차갑지 않을 수 없었던 친척 아주머니(마쓰시마 나나코 씨) 쪽에도 빛을 비춥니다. 「전쟁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인간 드라마」라고 홈페이지 해설에 있으며, 노사카 씨는 「전시하를 힘껏 살다 죽어 가는, 아름다운 남매애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나는 살아남았고, 게다가 그렇게 상냥한 형은 아니었다. 그 시대는 누구나 살기 어려웠다. 남자들은 목숨을 걸었고, 여자들도 또한 싸우고 있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노사카 씨는 마이니치신문에 매주 「일곱 번 넘어져 여덟 번 일어서기」를 연재 중인데, 그 133회(2012년 6월 23일자)에서 『반딧불의 무덤』을 언급하며 「……참호 안에 자리를 깔고, 짧은 겉옷 위에 여동생을 눕히고, 나는 비틀거리며 오로지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반딧불의 무덤』에는 이 일부를 썼다. 픽션도 많이 섞인다. ……마침 지금쯤 계절, 습기와 더위와, 무엇보다 굶

火垂るの墓アニメ3.jpg

주림에 괴로워하며 우리는 횡혈 참호에 있었다. 67년을 지나 나는 여든을 넘었다. 다른 일은 잊어도, 그 깊은 어둠은 어제 일처럼 나에게 짓누른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88년 스튜디오 지브리가 애니메이션(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왼쪽 사진을 제작했고, 또 2008년 7월에 실사 영화(히나데라 타로 감독)=오른쪽·아래 사진도 공개되었습니다.

 처음 애니메이션을 보았을 때, 남매, 특히 어린 세쓰코가 힘껏 살

火垂るの墓 映画.jpg

아 나가려는 기특함에 가슴이 메고, 드러나는 어른들의 에고와 타산에 짓눌려 가는 잔혹함은, 보고 있기가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카하타 감독의 제작 의도는 뜻밖이었습니다. 월간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주』(도쿠마쇼텐) 1988년 5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남매 둘이서) 가정생활을 쌓는 즐거움, 그 안의 마음이 오가는 것, 말하자면 사랑, 그 한도에서 세이타는 매우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것이죠. ……주위 어른들은 차가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이타 쪽도 사람과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구하기는커녕, 차례로 그 기회를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현대에 끌어당겨 이어갑니다.

 「사회생활은 번거로운 일뿐, 가능하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사귐은 피하고 싶고,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고 싶다, 그것이 현대입니다. ……세이타의 심정은 아플 만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이타와 세쓰코가 산 시대는 이웃조나 애국부인회, 산업보국회, 물론 군대……억압적 집단주의가 취해지고 있었습니다. ……세이타는 그런 곳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는 것이겠지요. ……만일 다시 시대가 역전된다면, 과연 우리는 ……전체주의에 떠밀리지 않고 끝날 수 있을까요. 세이타가 되기는커녕, 미망인 이상으로 세이타를 비난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나는 두려운 기분이 듭니다」

 보는 법, 느끼는 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다카하타 감독의 말은 생각하게 합니다. 보기 괴롭다는 단순한 반응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요…… 그래서야말로 『반딧불의 무덤』은 몇 번이고 드라마와 영화가 되는 것이겠지요. 저 자신도 앞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영상도 반복해 다시 볼 것입니다. 다만, 아이는 몇 살이 되면 보여 줄까…… 이 점은 조금 고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