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다케바시 팰리스사이드 빌딩 바로 근처 기타노마루 공원 시미즈몬을 올라간 곳에서, 하나미즈키가 흰 꽃과 분홍 꽃을 피워 절정입니다. 마주 서서 지팡이를 짚은 요시다 시게루 동상이 훌륭한 개화를 감상하며 즐기는 듯합니다.

 하나미즈키는 이제 일본 곳곳에서 보이지만, 원래 북아메리카·멕시코 북동부에 자생하며 일본에는 없던 식물입니다. 외래종이라 하면 그뿐이지만, 일본에 들어온 데는 벚꽃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 포토맥 강변의 벚꽃은 이제 세계적 명소가 되었지만, 약 100년 전 1912(메이지 45)년, 당시 도쿄 시장이던 오자키 유키오가 미 대통령 부인 헬렌 태프트 여사의 요청으로 보낸 3000본의 묘목이 그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 답례로 일본에 보내진 것이 하나미즈키였습니다. 1915(다이쇼 4)년의 일입니다. 흰 꽃이 피는 묘목 약 40본은 히비야 공원·고이시카와 식물원 등에 심었습니다. 2년 뒤에는 분홍 하나미즈키 13본과 약 0.5kg의 종자도 보내져 길렀습니다. 하나미즈키의 꽃말 「답례」「내 마음을 받아 주세요」는 일본에서 보낸 벚꽃에 대한 감사로서 정말 어울리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 하나미즈키는 적국의 꽃으로 냉대받았고, 종전 무렵부터 많이 잊혔습니다. 이에 마음 아파한 것이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아라가키 히데오 씨로, 「덴세이진고」와 주간아사히에서 일본에서의 하나미즈키 부흥을 호소했습니다. 도쿄 로터리클럽이 호응해 창립 50주년 프로젝트로 국내 하나미즈키 식수를 결정하고, 1971(쇼와 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아모드 로터리클럽에서 묘목 300본이 도착했습니다. 신주쿠교엔에 가식한 뒤 1973(쇼와 48)년 10월 기타노마루 공원에 옮겨 심었습니다. 이후 황거 외원·도쿄도립 미즈모토 공원 등에도 심어지고, 각지 로터리클럽 등이 식수해 퍼져 나갔습니다.

 약 100년 전 일본에 처음 들어온 하나미즈키 원목은, 도쿄도 세타가야구 도립 원예고등학교에 2본, 고이시카와 식물원에 1본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미즈키는 일본에 있던 야마보시와 닮아 처음에는 아메리카야마보시로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러나 미즈키 무리이고 꽃이 눈에 띄는 데서 하나미즈키로 바뀌었습니다. 벚꽃의 답례라 해서 일본인의 「꽃놀이 좋아함」에서 온 이름은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