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스사이드 빌딩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오테마치역에서 내려 마루노우치 빌딩에서 진행 중인 'Moai 미래를 향해 산다'(28일까지)에 다녀왔습니다=사진㊤=. 19일 이 블로그에 쓴 대로, 전시 중인 모아이는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정으로 보내질 높이 3m, 무게 2톤(받침대 제외)입니다. 얼굴도 역시 위압적입니다=사진㊦=.
높이 1~10m, 무게는 최대 80톤을 넘는 모아이가 아와지섬 4분의 1쯤 되는 작은 이스터섬에 1000체 이상 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은 거상을 만들었을까요? 무거운 석상은 어떻게 옮겼을까요? 문명 소멸의 사례로 꼽히는 섬에는 지금도 많은 수수께끼가 남아 있습니다. 진상은 어땠을까요.
섬에 역사 기록은 없습니다(상형문자는 남아 있으나 해독되지 않음). 통설은 다음과 같습니다.——대형 카누를 탄 폴리네시아인이 섬에 와 문명사가 시작되었으나, 시기는 서기 5세기~1200년경까지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코코야시·빵나무 등 식용 식물은 자라지 않았고, 화전을 반복한 결과 17세기 말까지 숲이 사라졌습니다. 인구 증가와 자원 고갈을 배경으로 섬내 집단 간 투쟁이 격화되어 문명도 붕괴했다고 합니다. 모아이는 조상 숭배에 기반한 종교적 건조물로 11세기경부터 만들어진 것 같으나, 문명 쇠퇴에 따라 16세기경 제작이 멈추고 오히려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전성기 1만 명에 달했다는 섬 인구는 18~19세기 서양인이 섬에 발을 디뎠을 때 2000~3000명. 19세기 후반 역병(천연두로 전해짐)이 들어오고 주민이 노예로 끌려가 인구가 100명쯤까지 급감했습니다. 라파누이로 불리는 원주민 후손에 더해 1888년 칠레 병합 이후 이민자를 포함해 현재 약 4000명이 삽니다——.
섬의 성쇠의 수수께끼를 파헤친 기사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일본판' 2012년 7월호에 있으며, 다이제스트를 웹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http://special.nikkeibp.co.jp/ts/article/ac0b/139205/201207/index.html).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퓰리처상 작가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2005년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 자원 남용이 사회 붕괴를 초래한 명확한 사례로 들고, 모아이가 문명 붕괴를 앞당겼다고 주장합니다. 수장들의 힘의 상징으로 ① 더 큰 상을 짓려 경쟁 ② 석상은 눕혀 나무 썰매에 실어 나무 레일 위를 끌고 감 ③ 운반에 대량 목재와 많은 인력 필요 ④ 사람이 많으면 식량도 증가 ⑤ 더 많은 토지 개간…… 환경 파괴가 가속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와이대학 테리 헌트 등은 섬의 환경 파괴가 주민 책임이 아니라고 봅니다. ① 멸종한 야자 열매에 남양쥐의 날카로운 이빨 자국 ② 쥐는 이주자와 같은 카누로 왔음 ③ 쥐는 수년 만에 섬 전체로 퍼져 야자 열매를 먹어 숲을 멸종으로 몰았다——고 추정합니다. 모아이 운반에 대해서도 세워 좌우로 흔들며 전진시켜 작업은 소수로 가능하고 나무가 필요 없었다며, 모아이를 위한 대량 벌목을 부정합니다.
당신도 도심에서 모아이상을 바라보며 속세를 떠난 수수께끼 풀이에 마음을 두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