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쿄 히가시교엔의 히라카와문 근처, 팰리스사이드 빌딩 앞에 「오타 도칸 공 추모의 비」가 있습니다. 1936년(쇼와 11년) 7월 도쿄 시장 우시즈카 도라지로가 세운 것으로, 비석에는 「간쇼 5년 봄, 에도성의 성장 오타 도칸 공이 상경하여 조회할 때, 거성에 관한 칙문에 받들어 답한 노래에
내 암자는 솔밭에 이어 바다 가까이, 후지의 높은 봉우리를 처마 끝에서 보리라
라는 한 수가 있다. 성은 동쪽으로 강을 두르고 남쪽은 바다를 면하며 서쪽은 구릉이 기복하여 멀리 후지의 수려한 봉우리를 우러른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와카는 도칸의 노래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한 수입니다. 지금의 도쿄에서 「멀리 후지의 수려한 봉우리를 우러르는」 일은 어렵지만, 도칸은 간토 제일의 명성이라 일컬어진 에도성 안 어디에서 이 노래를 읊었을까요.
도칸은 에도성 축성의 후보지로 시노바즈노이케 북쪽의 우에노 대지, 고지마치 대지, 시나가와의 고텐야마, 마고메 등을 살펴본 뒤, 그중 조로쿠 원년(1457)에 남쪽 히비야 만을 내려다보는 고지마치 대지(현

재지)의 에도 씨 저택 터에 성을 쌓았습니다. 지금의 히가시교엔에 남는 천수대 근처, 궁내청 서릉부 부근입니다. 북쪽에는 간다의 산, 동쪽으로는 히라카와(지금의 니혼바시강)가 흐르고, 서쪽은 늪(다메이케)이어서, 성으로서는 최적의 지형이었습니다.
성곽은 높이 약 20~30미터의 절벽 위에 서 있었고, 혼마루의 근성, 니노마루의 중성, 산노마루의 외성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근성이 중심이었고, 여기에는 도칸의 거처인 「조쇼켄」이라는 높은 누각, 말하자면 금각·은각과 같은 망루가 있었습니다. 시나가와에서 아사쿠사, 스미다강까지 눈아래 있었고, 후지산과 쓰쿠바산이 멀리 보였습니다. 조쇼켄은 「천수」에 필적하는 것으로, 도칸은 이 망루에서 후지의 흰 눈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후지미 망루가 남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 도칸은 에도성 축성에 이어 사가미, 무사시 등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웠으나, 주군의 시기심으로 분메이 18년(1486) 7월, 지금의 가나가와현 이세하라시에서 암살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