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스사이드 빌딩을 나와 어슬렁 에도성(고쿄) ‘니주바시’로. 9월 14일에 쓴 이어짐입니다.
지난번, 지하철 지요다선 ‘니주바시마에역’에서 내려 고쿄 외원 구스노키 마사시게상 거의 정면에 ‘고쿄 정문 석교’가 있고, 그 바로 안쪽에 또 하나 ‘고쿄 정문 철교’가 있다는 것, ‘니주바시’란 정식으로는 ‘철교’를 가리킨다는 것, 그렇다고 해도 ‘석교’와 ‘철교’를 합쳐 ‘니주바시’라고 한다는 것 등을 썼습니다.
역사상 ‘니주바시’ 이름을 단 사건이 크게 3가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먼저 가장 큰 사건이 1954년 1월 2일 ‘니주바시 사건’. 정월 정례 고쿄 일반 참하에 많은 사람이 찾아 ‘니주바시’에서 도미노처럼 쓰러져 16명이 사망, 65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참사가 된 것입니다. 사건이라고는 해도 사고이지요. 맨 위 사진은 이를 보도한 1월 3일 『마이니치신문』 조간 사회면입니다.
황궁경찰과 경시청 마루노우치서의 경비가 불충분했다는 것으로, 경찰은 경비상 결함을 인정해 이누카이 겐 법무대신 등이 피해자를 위문했다고 하지만, 황궁경찰과 경시청의 설명이 어긋나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시대든 비슷한 일이 있지요. 최종적으로 경찰 관계 9명이 처분된 듯하지만 형사 사건으로는 되지 않

았다고 합니다.
이 현장의 다리는 신문 지면에서는 알기 어렵지만, 오른쪽 위 사진(『아사히그래프』 1954년 1월 20일호)과 다른 현장 사진 오른쪽 아래 등을 보면 위 두 다리 중 틀림없이 ‘석교’입니다(14일 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 참조). 즉 정확히 말해 ‘니주바시=철교’가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나머지 둘은 전전으로, 폭탄 관련 사건입니다.
첫 번째 니주바시 폭탄 사건은 1922(다이쇼 11)년 3월 17일, 다이쇼 천황(섭정궁)에게 상소문을 건네 직소할 목적으로 니주바시에서 들어가려 한 노동자 후지타 류지로가 갖고 있던 폭탄에 불을 붙여 다리 위에서 폭사한 사건입니다.
두 번째 니주바시 폭탄 사건은 1924(다이쇼 13)년 1월 5일 조선 독립운동 조직 상하이 의열단 멤버 김지섭이 고쿄 돌입을 꾀해 경관에게 수류탄을 던진(모두 불발) 사건으로, 김은 무기징역이 확정(후에 징역 20년으로 감형)되고 1928(쇼와 3년) 옥사했습니다.
양 사건 모두 무대는 역시 ‘석교’로, ‘니주바시 사건’이라는 이름은 부정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눈을 부릅뜰 일은 아닐지…….
덧붙여 고쿄 외원을 관리하는 환경성 사이트의 ‘니주바시’를 소개하는 페이지=아래 사진=에는 ‘‘니주바시’는 일반적으로 이 두 다리를 총칭해 말하지만, 엄밀히는 안쪽 다리를 가리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사진은 석교이고 안쪽 철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양쪽 다리 사진은 써 주었으면 하는 대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석교=니주바시’라는 세상에 널리 있는 오해를 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떠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