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스사이드 빌딩을 빠져나와 어슬렁. 이 계절 녹음이 움트는 에도성(고쿄) 히가시교엔을 산책하면 정말 최고의 기분입니다.

요사이 기온이 25~30도 가까이 되어 조금 땀이 나지만 바람은 상쾌합니다.

히라카와문에서 들어가 니노마루 정원으로 가면 전체적으로 녹색이 눈에 띕니다. 선명한 빨강·분홍 진달래, 사쓰키 계절은 이미 끝나고 ‘창포밭’의 하나쇼부는 이제부터라는 미묘한 지점이라 꽃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니노마루 연못 등나무 시렁(등나무는 이미 끝) 앞에 빽빽이 핀 꽃=(위 사진). 자, 무엇일까요.

아야메? 카키쓰바타?

안내판 등은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꽃을 잘 알 듯한 사람에게 물으니 카키쓰바타가 아니겠느냐는 것. 꽃 한가운데에서 바깥으로 흰 반문이 있는 것이 그런 듯합니다.

그리고 ‘창포밭’에서 유일하게 피어 있던 것이 ‘나스 히오기아야메’=(오른쪽 아래 사진). 1962년 도치기현 나스정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으로, 히가시교엔에서 재배하게 된 것은 쇼와 천황에 의해서이며, 천황의 저서 『나스의 식물지』에서 신품종으로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냐고 해도 그만큼 클로즈업해서 보지 못해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어느 것이 창포인가 제비꽃인가’이니까요.

그 바탕이 된 이야기가 “오월비에 늪가 마코모 물 다하여 어느 것이 창포인가 하며 끌어 괴로워한다”(『태평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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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말기 무장 미나모토노 요리마사(1104~1180년)이지요. 다이라가 정권에 협력해 출세하면서 마지막에는 전횡을 보다 못해 모치히토 왕의 거병에 가담해 패하고 자해한 사람입니다.

그 요리마사가 조정에 출몰하는 누에(괴물)를 퇴치하고 상으로 아야메노마에라는 미녀를 하사받게 되어, 12명의 비슷한 미녀 가운데서 찾아내라고 하여 구분이 가지 않아 곤란해 읊은 와카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노래에는 아야메만 나옵니다. 그것이 왜 카키쓰바타와 비교하게 되었을까요. 후대에 아야메와 카키쓰바타가 잘 닮았다는 이유로 ‘창포인가 제비꽃인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덧붙여 ‘어느 것이 창포’만 말하면 고사를 따라 ‘많은 가운데서 가려내지 못한다’는 뉘앙스이지만, ‘어느 것이 창포인가 제비꽃인가’라고 하면 둘을 비교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뜻이므로 쓰임도 미묘하게 다릅니다.

다만 요리마사 무렵의 창포(아야메)는 ‘붓꽃과’의 아야메, 카키쓰바타, 하나쇼부가 아니라 지금의 천남성과 창포(쇼부)였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창포는 단오 창포탕용 잎이 익숙하고, 꽃은 눈에 띄지 않는 황록색 방울양배추 같은 것. 『태평기』는 14세기 중엽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누군가가 어느 시점에 이 이야기를 만들었을까요. 뭐랄까, 그렇습니다.

게다가 하나쇼부를 일반적으로 창포(쇼부)라고 부르니 더 헷갈립니다. 만요 시대에 천남성과 창포를 아야메구사(문목초), 아야메는 잎이 닮아 하나아야메라고 불렀고, 이 잔재로 현대에는 하나아야메가 아야메가 되고 아야메구사는 쇼부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인 듯합니다. 다만 현대에도 창포를 쇼부라고도 아야메라고도 읽게 합니다. 일본어는 어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