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스사이드 빌딩을 빠져나와 다시 시미즈문입니다. 석축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 여러 가지를.

위 사진은 메이지 유신 무렵 시미즈문의 모습입니다. 『구 에도성 사진첩』의 한 장입니다(국립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미즈문이지만, 시미즈문 하면 도쿠가와 장군가의 고산쿄 하나인 시미즈가입니다. 확인해 두면, 다야스가, 히토쓰바시가, 시미즈가는 각 저택이 있었기 때문에 다리 이름이 된 것이 아니라, 다리 곁에 저택을 지었기 때문에 가명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미즈문 문명의 유래는? 주변에 샘물이 솟았다는 설, 예전에 이 일대에 기요미즈데라가 있어 그 이름을 취했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지금은 아사쿠사 쪽에 있는 ‘세이스이지’일까요. 교토의 ‘기요미즈데라’와는 물론 다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살펴보겠습니다).

에도 시대 지도로 장소를 복습해 둡니다. 앞서 메이레키 대화재(1657=메이레키 3년 ‘후리소데 화재’)에 대해 여러 차례 썼습니다. 당시 에도 시가지의 약 60%를 태운 에도 시대 최대의 이 화재로 에도성 혼마루 외에 성내 니시노마루 맞은편에 있던 고산케 저택도 타 아카사카 등으로 옮겼다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이 터를 포함해 주변에 있던 저택 상당수가 이전하여 성 북쪽·북서쪽 일대에 공터가 생겼습니다. 시내의 불이 에도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正保年中江戸絵図 御三家&井伊.jpg

그러나 이윽고 저택이 일부 부활합니다. 고산쿄의 저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산쿄를 확인해 두면, 시조는 다야스가가 8대 장군 요시무네의 차남 무네타케, 히토쓰바시가는 요시무네의 사남 무네타다, 시미즈가는 9대 장군 이에시게의 차남 시게요시. 각각 1730(교호 15)년, 1740(겐분 5)년, 1758(호레키 8)년에 각 문 안에 저택을 받았습니다. 일제히 생긴 것은 아닙니다.

메이레키 대화재 전의 『쇼호 연중 에도 에즈』( 위 지도 ), 고산쿄 저택이 생긴 뒤의 『덴포 개정 고에도 대에즈』( 아래 지도 )를 비교해 주십시오. 노란 원이 다케바시, 파란 원은 막말까지 쭉 있던 사쿠라다몬 밖의 이이 가 저택. 빨간 원이 각각 고산케와 고

天保改正御江戸大絵図 御三卿&井伊.jpg

산쿄의 저택입니다.

참고로 팰리스사이드 빌딩이 있는 장소는 아래 지도의 다케바시 오른쪽이며 ‘오쓰키야’라고 적혀 있습니다. 막부의 식량 창고 같은 곳이었습니다.

메이레키 대화재로 생긴 공터도, 대화재의 기억이 옅어지자 방화대였을 곳에도 일부 저택이 들어선 것일까요.

그렇다 해도 화재는 막말까지 여러 번 일어납니다. 지요다구 관광협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1863(분큐 3)년에 혼마루가 불타는 큰불이 있었고, 이때 당시 11대 장군 이에모치(1846~1866년)와 부인 지카코(세이칸인노미야)가 일시 시미즈가로 옮겼다고 합니다. 혼마루는 이때를 마지막으로 재건되지 않은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