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스사이드 빌딩을 나와 에도성(고쿄) 돌담을 걸어 봅니다. 지난번에는 히비야문을 다루었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히비야공원도 조금 알아보았습니다. 아는 것 같으면서 모르는 일도 있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왔을 당시 이 일대는 히비야 이리에라 불리며, 곧 바다였습니다. 한조몬에서 사쿠라다몬에 걸쳐 사쿠라다보리 등을 파는 등 주변이 정비되었고, 호를 판 흙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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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야 이리에가 메워져 다이묘 저택이 들어섰습니다.

히비야공원 유라쿠몬에서 우치보리도오리를 사이에 둔 호가 ‘히비야보리’입니다. 고쿄를 두른 호 가운데 이와타바시에서 바바사키몬까지, 우치보리도오리에서 히비야도오리로 꺾이는 L자형입니다. 제국극장 앞쯤이 됩니다. 이 호가 완성된 것은 1608년경이라고 합니다=왼쪽 지도 참조. 위 사진 오른쪽 위에 히비야보리가 보입니다.

지금의 공원 구역에는 에도 시대 모리·나베시마 등 대다이묘의 에도 가미야시키가 있었습니다. 메이지 신정부가 되어 히비야가하라라 불리는 공터가 된 뒤 육군 연병장이 들어섰으나, 1888년(메이지 21) 아오야마 화약고 터(지금의 메이지진구 가이엔)로 이전했습니다. 그 터는 관청 집중 계획에서 관청 건설이 예정되었으나, 이리에였던 땅이라 지반이 나빠 큰 빌딩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88년 11월 공원지로의 이용이 제안되었고, 이듬해 히비야공원을 제1로 제49까지 공원 정비 계획이 도쿄시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그때까지의 대규모 도시공원은 우에노공원이나 시바공원처럼 사찰·신사 경내가 중심이었고, 맨땅에서 새로 공원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1893년 도쿄시가 군에서 히비야를 불하받아 ‘히비야공원’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렇다고 계획이 쉽게 정해지지 않아 착공은 꽤 뒤로 미뤄집니다. 여러 안이 나왔으나 장단이 있어, 결국 1901년 독일 유학을 막 마친 혼다 세이로쿠를 중심으로 계획이 결정되었습니다. 1902년 4월 착공, 이듬해 6월 1일 가개원에 이르렀습니다. 혼다안은 독일식 정원을 지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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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번에 소개한 호를 살린 ‘신지이케’를 배치하는 등 일본적 요소도 남긴 점이 평가받았을 것입니다.

1922년 항공사진이 남아 있습니다=(오른쪽 사진). 왼쪽 위 공터에는 지금 경시청이 있습니다. 공터 길을 사이에 둔 맞은편은 (위에서) 사법성, 대심원, 해군성. 지금은 관청군이 고층화되고 공원의 나무도 자랐습니다.

말 그대로 도심의 오아시스입니다. 테니스 코트도 있어 가끔 이용합니다(추첨에 거의 안 됩니다). 지반이 별로 좋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는 이야기입니다.